살만 루슈디의 장편소설 ‘무어의 마지막 한숨’이 번역 출간됐다. 생존 소설가 중 가장 논쟁적인 작가의 세계관을 집약한 문제작이, 악마적 천재가 쉴 새 없이 떠드는 황홀한 거짓말 같은 문장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루슈디는 작년 8월 미국 뉴욕에서 강연 도중 무슬림으로 추정되는 괴한에게 테러를 당한 이후 다시 노벨문학상 후보로 급부상 중인 대문호다. 수상 시 이슬람권의 상상을 초월하는 극렬한 반발이 예상돼 수상 가능성은 아무래도 적지만 작년 노벨문학상 후보 2~3위로 오를 만큼 큰 화제를 몰고 다니는 문학계 슈퍼스타로 통한다. 루슈디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독립 후 혼란기였던 인도의 봄베이가 이번 소설의 배경이다. 주인공 무어가 ‘임신 4개월’ 만에 태어난다. 원인은 조산이 아니었고, 무어의 유전자가 성장 속도가 남들보다 2배 빨랐기 때문이었다. 10세 때 이미 190cm 장신이 된 무어는 스무 살 무렵 이미 중년이 됐다. ‘속도의 저주’ 속에서 살아야 하는 무어는 그렇게 타인보다 빠른 속도로 독립 후 인도의 관찰자가 된다.
2배속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빠르게 눈앞에 다가오는 가속도의 인도 사회는 무어에게 그야말로 혼종(混種)의 세계로 이해된다.
서구의 정치적 지배에서 벗어났음에도 봄베이엔 매판자본이 설치며 억압과 소외를 잉태했고, 한 인간으로서 경제적인 독립은 멀고도 먼 이상으로만 느껴졌다. 정치와 경제의 혼종 상태가 독립국 인도의 1차적 혼돈이라면 2차적 혼돈은 다름 아닌 종교였다. 인도에선 힌두교, 이슬람교, 자이나교, 불교 등 수많은 종교가 기형적으로 결합했다. 그 결과 도시는 그야말로 하나의 뜨거운 용광로처럼 느껴졌다.
무어는 자신의 눈앞 풍경부터 그의 증조부까지 집안 4대를 바라보면서 인도의 근현대사를 독자와 함께 여행한다. 루슈디는 그 안에서 펼쳐지는 혼돈의 세상의 의미와 한 개인의 삶을 추적한다.
주인공 무어의 존재는 이 소설에서 복합적인 알레고리를 이룬다.
루슈디의 치밀한 설계도란 이런 것이다. 무어의 조상은 인도를 개척한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스쿠 다가마로 묘사되는데, 무어는 곧 모든 욕망이 결집한 봄베이 땅으로 모여들어 혼종으로 살아가야 했던 인도인을 상징해낸다. 무어의 신체 역시 신흥 국가 인도를 은유한다. 그의 성장 속도는 너무 빠르게 외부 세계에 노출되고야 만 한 세계의 풍경과 등가를 이룬다. 조막손으로 묘사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무어의 오른손도, 어딘가 불구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강한 힘을 내재한 인도만의 속성을 함축해낸다.
무어라는 이름은 1492년 일어난 실제 역사적 사건인 ‘그라나다의 항복’과 연관된다고 한다. 마지막 무어인인 보압딜 왕은 항복 후 망명하면서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에서 한숨을 쉬었다. 세상은 이 사건을 ‘The moor’s last sigh(무어의 마지막 한숨)’로 부르고, 현재도 그 장소에 수스피로 델 모로(Suspiro del Moro)란 길이 아직 남아 있다. 루슈디의 소설에서 무어인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오래전 잃어버린 그들의 도시를 환기한다. 한 시대의 종언 이후 끊임없는 순례와 같은 삶 속에서 다시 또 생은 시작된다는 진리도 함께.
루슈디 대표작 ‘악마의 시’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눈치채겠지만 루슈디의 천재적인 상상력과 악마적인 수다는 이번 소설에서도 돋보인다.
타인보다 빠른 속도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저주는 ‘점보제트기 폭발로 추락 중인 두 남성 중 한 사람은 천사로, 한 사람은 악마로 변한다’는 기막힌 설정을 보여준 ‘악마의 시’에 비견할 만하다. “내게 글쓰기란 신이 떠난 자리를 메우는 것과 같다. 나는 이야기를 사랑하고, 코미디와 꿈, 그리고 새로움을 사랑한다. 소설이란 새로움을 만드는 것”이란 루슈디 문장에 밑줄을 긋게 된다.
이 소설에 쏟아진 문호들의 찬사는 백지 위에 펼쳐진 레드카펫에 가깝다. 네이딘 고디머, 도리스 레싱, 이언 매큐언 등 이미 노벨상을 받았거나 당장 노벨상을 줘도 이상하지 않을 위대한 작가들이 이 소설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