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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현장 12대1로 축소했더니…과학수사 싹텄다 [BOOKS]

아주 작은 죽음들 / 브루스 골드파브 지음 /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 김유태
  • 입력 : 2022.09.23 17:03:51 / 수정 : 2022.09.23 20:11:35
`현대 법의학의 어머니`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가 1940년대에 만든 디오라마. 살인현장을 1대12로 축척한 모형인 디오라마는 경찰의 증거찾기 훈련에 쓰였고, 현대 법의학 발전의 시초가 됐다. 왼쪽부터 `2층 현관`(1948년작), `도배지가 벗겨진 침실`(1949년작), `산지기의 오두막`(1945년작). [사진 제공 = 알에이치코리아]
`현대 법의학의 어머니`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가 1940년대에 만든 디오라마. 살인현장을 1대12로 축척한 모형인 디오라마는 경찰의 증거찾기 훈련에 쓰였고, 현대 법의학 발전의 시초가 됐다. 왼쪽부터 `2층 현관`(1948년작), `도배지가 벗겨진 침실`(1949년작), `산지기의 오두막`(1945년작). [사진 제공 = 알에이치코리아]

때는 2003년, 이 책의 저자가 면접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총책임자는 저자에게 물었다. 혹시 `손바닥 연구`를 들어봤느냐고. 그 방 한쪽 구석엔 덮개를 씌워놓은 작은 상자들이 놓여 있었다. 투명 아크릴판 안에 축소 재현된 공간과 인형이 보이는 상자였다. 들여다보니 이건 단순한 인형의 집이 아니었다. 벽지에 남은 핏자국, 불탄 침대에 누운 새까만 시신, 목매달아 죽어 보라색이 된 얼굴. 그러니까 저 모형은 살인사건 현장을 똑같이 만든 미니어처, 폭력과 죽음이 깃든 `방`이었다.

`디오라마`로 불리는 이 축소 모형은 1940년대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1878~1962)라는 미국 여성의 손에서 만들어진 뒤 세계 범죄수사 물줄기를 틀어버린 걸작이었다.

죽음의 미니어처는 현대 법의학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프랜시스 삶의 항로를 들여다보면 법의학이 한 여성의 헌신과 사유에서 탄생했음을 깨닫게 된다.


프랜시스는 부유한 집안의 똑똑한 상속녀였다. 돈 많은 페미니스트이자 `인형의 집`을 만든 부인으로도 기억된다. 어린 시절 베들레헴에서 의사들을 따라다녔고, 의사를 천직으로 알고 하버드대 의대 진학을 꿈꿨지만 하버드대는 당시 여성을 받아주지 않았다. 프랜시스는 변호사 남편과 결혼하고 세 자녀를 키웠다. 가끔 가족을 위해 축소 모형을 제작해 선물하곤 했다.

짱짱한 집안에 평화로운 가정. 거기에 특출 난 손재주를 보유했던 프랜시스가 범죄수사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계기는 그녀 나이 50세 무렵에 일어났다. 건강 악화로 치료시설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조지 버지스 매그래스란 남성을 만나게 된다. 매그래스는 프랜시스의 오빠 조지의 하버드대 동창이었고, 직업은 의문사 시신을 수사하는 최고 권위의 검시관이었다. 두 사람은 의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매그래스는 미국 내 검시 제도에 큰 불만을 품은 상태였다. 그가 생각하는 혁파 대상은 당시 사망 사건 조사관인 코로너(coroner)의 무능과 부패였다.

코로너 제도는 중세 영국에서 이뤄진 매장물 조사관 제도와 맥을 같이한다. 코로너는 왕실의 세금 징수 업무부터 사망 사건을 조사하는 일을 맡은 이들을 뜻했다. 정식 보안관이나 행정 장관이 코로너를 맡기도 했지만 의학과 법학에 무지한 나무꾼, 제빵사, 정육점 주인, 농부도 코로너가 될 수 있었다.

기초적인 의학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 사인(死因)을 파악하고 피의자를 기소·체포하다 보니 뇌물, 착복, 횡령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평결도 투표로 내릴 만큼 비전문가 집단이었다.

프랜시스와 매그래스는 대화 이후 같은 목적을 향하기 시작했다. 한때 의대에 열망을 품었던 프랜시스는 하버드대에 법의학과를 개설하는 청사진을 그린다. 의학, 법학, 경찰의 동시 개혁이 필요했는데 프랜시스는 이를 위해 지위, 인맥, 자원 등 자신의 모든 영향력을 동원했다. 일단 매그래스의 `검시관 부임 25주년`을 기념하는 명목으로 하버드대에 당시 25만달러를 기부했고, 추가 기부를 약속했다. 엄청난 거액이었다. 또 록펠러재단과 함께 9쪽짜리 법의학부 개설 제안서를 대학에 낸다. 하버드대 법의학과 내 세미나부터 실험실, 영상 필름이 갖춰진 도서관 등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영역이 없었다.

그중 프랜시스의 최대 업적은 디오라마였다. 디오라마는 `실제 환경에 가까운 축소 모형`을 뜻한다. 프랜시스는 무엇보다 경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사망현장에 맨 먼저 도착하는 이는 대개 경찰이었고, 그들은 절대로 현장을 훼손하지 않아야 했다. 손재주가 있던 프랜시스는 정장을 차려입은 90명의 음악가와 악기를 미니어처로 만든 풍부한 경험이 있었다. 그 기억을 활용해 프랜시스는 1대12의 정확한 축척으로 범죄현장 모습과 시신을 배치한 모형을 만들었다. 빨간 매니큐어로 재현한 벽에 튄 피와 피 웅덩이, 그 어딘가에 살인의 증거가 숨겨져 있었다. 경찰관들은 프랜시스가 개최한 최초의 `경찰관 살인사건 세미나`에 참석해 90분간 2~3개의 디오라마를 관찰하고 증거를 찾아내는 훈련에 임했다. 이건 과학적 범죄수사의 첫걸음이었다.

프랜시스의 디오라마는 현재 18개가 남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디오라마 관리인이자 미국 메릴랜드주 수석검시관실 공공정보원이다. 저자는 70년 넘은 디오라마의 가치를 대번에 알아보고 복원 과정에 전부 참여했다. 프랜시스가 `의문사에 관한 손바닥 연구`라고 이름 붙인 디오라마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2017년 `그녀의 취미는 살인`이란 제목으로 전시하기도 했다.

"수사관은 자신에게 이중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범죄자의 죄를 밝히는 한편 무고한 자들의 누명을 벗겨주어야 한다. 그는 오직 사실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볼 수 있을 만큼 간단명료한 진실만을 찾아야 한다." 사실에 관한 한 프랜시스의 집념이 돋보이는 문장이다. 프랜시스의 삶은 한 사람의 억울함이 깃든 마지막 처소에서 부조리와 불합리의 더께를 닦아낸 뒤 인간의 맑은 이성을 발견해가는 명민한 여정이 아닐 수 없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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