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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행군 군인들 필로폰 먹었다…전쟁이 약을 만들었다는데[BOOKS]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 백승만 지음 / 동아시아 펴냄

  • 이용익
  • 입력 : 2022.09.23 17:03:27 / 수정 : 2022.09.23 20:25:18

머나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다양한 기술을 실험하는 경연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상대를 섬멸하고 우리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갖은 시도를 해보는 과정에서 평소보다 급격히 빠른 발전이 이뤄진 것이다. 약학 분야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순 없다. 전쟁과 질병, 약은 서로가 서로의 세력을 키워준 동업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분 만에 수강 신청이 마감되는 인기 강의를 해온 백승만 경상국립대 약대 교수는 자신의 강의를 더욱 발전시켜 이 신간을 펴냈다. 아편부터 펜타닐까지, 메스암페타민 등 현대 사회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약과 그와 관련된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사례들이 약학의 발전과 전쟁의 역사를 함께 엮어낸다. "인류사에 끼친 영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위험한 악당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는 것이 저자의 표현이다.

실제로 전쟁과 약은 한 몸이 되곤 한다. 아예 약의 이름이 붙은 아편전쟁은 차치하고서라도 전쟁을 위해 약이 쓰인 사례는 무수히 많다. 1893년에 나가이 나가요시가 합성한 메스암페타민, 즉 필로폰은 각성제이자 피로해소제로 군인들에게 쓰였다. 야간 행군을 해야 했던 2차 세계대전의 독일군도, 가미카제 특공대도 같은 약을 먹었던 것이다.

반대로 전쟁이 약을 만들어낼 때도 있다. 1939년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아편 수입이 막히자 지금도 진통제로 사용되는 페티딘을 개발했는데 이는 오늘까지도 널리 쓰이는 약물로 남아 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이 유럽인에게 대항해 독화살을 제작할 때 사용한 튜보큐라인이라는 물질도 1950년대까지 전신마취할 때 사용됐다.

하지만 전쟁과 약, 약과 전쟁의 선후 관계를 따지는 것이 이제 큰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페티딘의 구조를 기반으로 1960년대에 개발된 펜타닐은 요즘 뉴스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마약성 진통제로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2002년 체첸 반군이 일으킨 모스크바 극장 테러 사건에서 67명의 인질을 사망하게 만든 수면가스의 성분도 펜타닐이었다. 전쟁이 약을 만들었고, 그 약을 다시 한번 바꿔서 독이 된 셈이다.

저자는 애초에 의약품 개발이 전쟁을 포함해 수많은 우연한 계기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며, 모든 독이 약이지만 모든 약이 독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차피 전쟁과 질병이 없는 세상을 실현할 수 없다면 결국 이에 맞서는 우리의 보건 의료 체계가 중요하다는 깨달음도 함께 찾아올 것이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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