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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이효석문학상] 사랑 앞에서 감각에 속는 나약한 인간군상

불륜으로 이사하는 희진 통해
영원한 테마인 사랑을 사유

  • 김유태
  • 입력 : 2022.08.09 17:20:55 / 수정 : 2022.08.10 13:38:19
◆ 제23회 이효석 문학상 / 최종심 진출작 ⑤ 위수정 `아무도` ◆


사랑은 이제 낡은 이야기일까. 새 사랑이 발명될 때마다 우리는 그 서사의 끝을 궁금해한다. 위수정의 단편 `아무도`는 낡은 불륜의 서사를 낡지 않은 시선으로 풀어간다.

주인공은 희진. 그는 햇볕이 잘 드는 원룸을 구해 이사를 나가는 중이다. 남편 수형과의 별거. 귀책사유는 희진의 불륜 때문이었다. 희진은 자주 `그`를 생각한다. `그`와의 대화들, 말할 때의 표정, 체온 같은 것들. 희진은 또 생각한다. `어떤 마음은 없는 듯 죽이고 사는 게 어른인 걸까.` 하지만 그때마다 묻고 싶다. `어째서 당신들은 미래가 당연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걸까.`

이사 당일 초인종을 누른 희진 아버지 손에 크리스피크림 도넛 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 도넛의 맛은 너무 달아 쓴맛까지 느껴진다. 아버지는 본론으로 들어가 잘못을 추궁하는 대신 수세미를 들고 주방 타일을 닦기 시작한다.

고교 시절 희진은 아버지 곁에 선 민소매 원피스 차림의 젊은 여자를 본 적이 있었다. 아버지 표정은 환했다. 길가에서 희진은 아버지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길 바랐다. 성실하게 돈을 벌어오는 가장이자 여름휴가 땐 가족 여행을 떠나는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아버지였다. 이제 와서 군말 없이 타일을 닦아주는 아버지에게서 희진이 느끼는 감정은 이런 것이다. `동병상련.`

희진은 아이스크림 케이크 상자에 손을 넣는다. 조약돌만 한 드라이아이스에 손등을 데이고, 이어 자해하듯이 그것을 손바닥으로 꽉 쥔다. 처음엔 서늘하게 차갑다가 따끔한 통증이 느껴지다가 찢어지는 것처럼 뜨거운 드라이아이스. 의사는 말한다. "너무 차가워서 뜨겁다고 느끼는 겁니다." 드라이아이스의 이중적인 감각처럼, 너무 달아 쓰게 느껴지는 도넛 맛처럼, 인간은 사랑 앞에서 감각의 인과를 혼동하고야 마는 나약한 존재가 된다.

소설엔 이처럼 희진이 사랑하는 `그`의 실루엣이 흐릿하다. 그 대신 희진이 이별 이후 느끼는 감정이 한 발자국씩 인장처럼 찍히며 나아간다. 이것이 위수정 소설의 특이점이 된다. 2000년대 우리나라 문학시장에 밀물처럼 들이쳤던 `불륜 서사`가 화자와 대상 간의 불가항력적인 애정에 집중했던 반면 위수정 소설 `아무도`는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진 화자의 감정을 세필화처럼 그린다. 잔치가 끝난 것이다. 빈 무대에 남아 아무도 듣지 못할 자기만의 노래를 부르는 희진의 목소리는 인간의 난제인 사랑을 질문한다.

편혜영 소설가는 "위수정 소설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분류되지 않는 열정으로서의 감정, 즉 정념(passion)이 발견되지 않는 남녀 관계라는 점"이라며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데 흉을 남기고, 또 결국 지워지는 드라이아이스에 주목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경재 평론가는 "욕망의 대상은 후경화되고 욕망의 주체가 느끼는 감각과 상태가 전경화된 소설"이라고 평하면서 "집을 나올 정도로 강렬한 욕망이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냉정하고 절제돼 있다. 그것은 마치 드라이아이스처럼 차가워 보이지만 화상을 입힐 정도로 치명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수정 작가는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무덤이 조금씩`이 당선되며 데뷔했다. 소설집 `은의 세계`를 출간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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