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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이상행동 이면에 꾹 묻어둔 상처와 결핍

생존자들 / 캐서린 길디어 지음 / 이은선 옮김 / 라이프앤페이지 지음 / 1만7800원

  • 김유태
  • 입력 : 2022.05.20 17:07:40 / 수정 : 2022.05.20 17:09:34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살다 보면 뭔가 어긋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별일 아닌 일에 극도의 화를 내거나, 분노해야 하는 자리에서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앉아 있거나.

신간 `생존자들`을 쓴 심리학자인 저자는 이렇게 쓴다.

`심리학은 고고학을 닮았다. 발굴되어 나오는 유물의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가며 한 층, 한 층 파헤치다 보면 소설보다 더 신기해 보이는, 묻혀 있던 세상이 통째로 등장한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우주의 크기를 초월하는 복잡계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이상행동에는 무수히 꼬여버린 마음이 깃들어 있곤 하다. 이 책의 저자는 피터, 대니, 로라, 매들린이란 인물 4명의 삶을 따라가면서 왜 세상의 많은 사람이 중심으로부터 어긋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분석한다.


대니 모리슨의 일화부터. 저자를 찾아온 대니의 동료는 말한다. 대니의 아내와 네 살 외동딸이 두 달 전 교통사고로 즉사했는데, 대니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겉보기에도 전혀 슬픔이 없고, 장례식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출근까지 했단다. 슬픔을 폭발시키지 않는 대니가 걱정돼 동료가 심리치료를 부탁한 것이었다.

`난 괜찮다`며 상담실을 오가던 대니는, 결국 4개월 만에 자신 인생사의 거대한 변곡점을 털어놓는다.

대니의 집안은 북부 캐나다 원주민 출신으로, 부모님은 덫사냥꾼이었다. 아무 문제가 없던 어느 날, 백인 남성들이 집으로 찾아와 대니와 그의 누나 로즈를 1000㎞ 떨어진 기숙학교로 끌고 간다. 원주민이 미개하다는 이유로 원주민 아이들을 강제수용한 셈이었다. 이것은 합법이었고 정부가 추진한 시책이었다.

득시글거리는 아이들과 함께 도착한 곳은 가톨릭계 학교였다. 그곳은 `문화적인 집단학살` 현장이었다. 원주민에겐 `영혼의 연장`과 같던 긴 머리카락이 잘려 나갔고, 18세 대니는 이름 대신 `78번`으로 불렸다. 한 신부는 그를 5년 넘게 성폭행했다. 대니는 무표정이란 가면을 쓰고 슬픔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참척의 슬픔조차 드러내지 못한 채 심각하게 앓고 있던 것이었다. 저자는 `분노하지 않는` 대니에게 말한다. "분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 분노는 상처와 고통이란 감정을 무의식 속에서 끌어낼 때 쓰이는 연료다."

중국계 미국인 피터 창의 사연도 눈물겹다. 피터의 문제는 이성과의 잠자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언뜻 보면 해결 가능한 문제처럼 느껴지지만 몇 년간 이 문제가 지속되자 심각해졌다. 상대에게 애정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몸에서 이상이 발생한 것도 아니었다. 저자는 결국 피터의 유년 시절 결핍된 마음, 모성의 빈자리를 찾아낸다.

피터의 모친은 작은 식당 사장이었다. 손님 식사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피터는 하루 18시간씩 식당 다락방에 갇혔다. 2세부터 5세까지 `감금`은 이어졌다. 다 먹은 토마토 스튜 깡통에 배변해야 했는데 조준을 제대로 못하면 혼났고, 날카로운 깡통 모서리에 엉덩이를 베어도 혼났으니, 방치된 어린아이는 빈방의 외로움 속에서 자라났다.

모성을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으니 육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던 것이었다. 저자는 상담 도중 피터의 조카가 크게 화상을 입은 모습을 보고 피터의 모친이 병실 복도가 울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는 대목에 집중하고는, 피터 모친이 가진 결핍의 원인까지 다 찾아낸다. 아편굴과 프랑스제 담배가 나오는 대목에선 눈을 질끈 감지 않을 수가 없다.

지옥을 살아본 사람에게, 그래서 지금 생도 지옥인 사람에게 저자는 말한다. "용감하다는 건 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불가능한 상황을 대면하고, 날마다 일어나 똑같은 시련을 반복하는 일이다." 겹겹의 우주 같은 인간의 마음, 그 우주 속의 숨겨진 진실의 정면을 똑바로 쳐다봐야만 삶의 고통이 치유될 수 있음을 책은 강조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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