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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달콤한 복지 내건 美·소련 핵개발도시 민낯

플루토피아 핵 재난의 지구사 / 케이트 브라운 지음 / 우동현 옮김 / 푸른역사 펴냄 / 3만8900원

  • 박대의
  • 입력 : 2021.11.26 17:00:08 / 수정 : 2021.11.26 19:21:10
1944년 미국 리치랜드 부근 핸퍼드 캠프의 여자 막사에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이곳은 미국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공급할 플루토늄 생산공장을 운영하고자 만들어졌다.  [사진 제공 = 푸른역사]
1944년 미국 리치랜드 부근 핸퍼드 캠프의 여자 막사에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이곳은 미국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공급할 플루토늄 생산공장을 운영하고자 만들어졌다. [사진 제공 = 푸른역사]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0년대 중반. 냉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미국과 소련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두 나라가 아슬아슬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도시 하나를 파멸시키는 힘을 과시하며 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핵무기였다.

대립각이 날 선 두 국가였지만 그 움직임은 비슷했다. 미국과 소련은 냉전의 적수였지만 상당한 공통점을 가진 도시를 만들어냈다. 미국 워싱턴주 동부 리치랜드와 러시아 우랄 남부 오죠르스크는 순조로운 핵무기 개발을 위해 만든 신도시였다.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이 도시는 정부 소유의 기업과 소속 기업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움직였다.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빠르고 많이 생산하기 위해 국가가 공장 주변에 만든 도시는 이상향에 가까운 복지 도시였다. 특이한 점은 양극단의 이념을 가진 국가에서 두 도시 거주자들이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리치랜드는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사유재산과 자유시장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는 이례적인 도시였다. 주민들은 스스로 도시에 벽을 만들기를 원했다. 1950년대 리치랜드에서 열린 2번의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통합과 자치는 물론 자유로운 기업 활동도 거부했다. 사회주의가 당연했던 오죠르스크 주민들은 국가의 통제에 순응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조국을 위해 만든 플루토늄이 부(富)로 돌아오는 것이 이 도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권리였다.


역사학자 케이트 브라운은 이 복지 도시를 `플루토피아`라고 명명했다. 플루토늄(plutonium)과 장소(topia) 또는 이상향(utopia)의 합성어다. 브라운은 `플루토피아-핵 재난의 지구사`라는 저서를 통해 플루토피아 내부 시민들이 복지를 누리는 대가로 자신들의 권리를 자발적으로 내놓았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힌다.

환경사와 냉전사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온 저자는 과거 기밀로 분류된 문서를 들춰내고 플루토피아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도시의 후유증은 도시가 개발되는 과정에서부터 예견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책은 미국과 소련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을 플루토늄 생산과 관련된 위험과 희생에 동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플루토피아를 만들어냈다는 점을 소개한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약 40년간 인근 플루토늄 생산 공장에서 방출된 방사능 양은 체르노빌 방사능의 2배인 2억퀴리에 달한다. 도시의 지도자와 과학자들은 자신의 목표 달성과 부의 축적을 위해 내부에 고립된 주민들에게 안전과 국가적 명분의 정당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면서 눈과 귀를 막았다.

저자는 플루토피아 자체만으로 도시가 유지될 수 없었다고 말한다. 플루토피아 도시 옆에는 죄수나 소수민족, 농부, 이주노동자 등으로 이뤄진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이들이 사는 곳은 쾌적하고 깨끗한 상류층 거주지와 구분돼 의도적으로 방출되는 폐기물에 노출된다. 플루토피아 과학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이 주민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플루토피아의 문제는 도시가 완성된 지 수십 년이 지난 1986년 체르노빌 재난이 발생하고서야 수면 위로 오르게 된다.

저자는 북한의 핵무기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재무장 움직임 속에 동아시아에서도 플루토피아가 만들어질 가능성을 제기한다. "미래의 언젠가 지구 도처에 존재하는, 장벽으로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핵 생산 현장 근처에서 이러한 장면들이 반복되는 것을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한다"는 저자의 말은 핵 개발의 참혹한 결과가 현재진행형의 역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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