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야기하고 누가 판단하는가
이 모든 것은 주인공을 다시 찾는 과정이다
2017년 10월,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 고발로 시작되어 문화ㆍ예술계는 물론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미투 운동은 21세기 페미니즘의 분수령이 되었다. 솔닛은 미투 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누군가가 말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야 사람들이 귀를 열고 그 말을 듣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그간 수많은 여성들은 침묵을 강요당했고 간신히 입을 연다 해도 신빙성을 의심받거나 가벼이 취급되었다. 솔닛은 누군가 목소리를 높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발생하는 필연적인 갈등과 분쟁을 면밀히 살피며 그 갈등을 딛고 조금씩 발전해가는 사회를 예리하면서도 재치 있는 특유의 글솜씨로 묘사한다.
1부에서는 침묵을 깨기 시작한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솔닛은 우리 사회의 서사가 주로 백인, 그중에서도 남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음을 지적하며 사회가 그들에게 얼마나 너그러운지, 권력자나 언론 등이 어떻게 그들의 결점을 숨기고 진실을 왜곡하는지 비판한다. 남성 서사가 과대 대표되는 현실을 낱낱이 밝히며 유력 인사들의 성추행과 성폭행을 용감히 폭로해 판을 뒤흔든 여성들의 목소리를 함께 전한다. 수많은 여성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존재감도 목소리도 없는 ‘노바디’ 취급을 받아오고 있음을 지적하고, 오늘날에도 미국 전역에서 계속되고 있는 가정폭력과 소수자의 투표권이 억압받는 현실, 그리고 여성의 신체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임신중지 금지를 둘러싼 악의적인 거짓말과 논쟁까지 두루 살핀다.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언어로
희망과 가능성을 다시 쓰다
2부에는 익숙한 언어와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사유하는 글들이 수록되었다. 특히 뉴욕시 곳곳에 남성의 이름을 딴 거리, 지하철역, 기념비 등을 모두 여성의 이름으로 바꾸는 지도 제작 프로젝트 ‘여인들의 도시’를 소개하며 도시의 ‘남풍경’(manscape)을 새로이 명명한다. 그리고 역사에서 지워지거나 사소하게 취급받아온 여성들을 다시 호명하고, 공간이 여성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를 규제하는 상징, 경계, 규범, 관습 등을 비판하는 명징하고 탁월한 솔닛의 글들을 따라 읽노라면 새로운 시대가 눈앞에 도래했음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지금까지 일어난 무수한 변화는 특정한 영웅 한명이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 만든 것임을 강조하며 연대의 힘을 역설하고, 과거와 현재, 연대와 협력의 의미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통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이 책은 기후변화에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며 등교 거부 시위를 이끈 세계 각국의 청소년에게 보내는 각별한 편지로 마무리되는데, 침묵과 순종을 거부하고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는 수십만명의 청소년들이 보여주는 희망과 가능성이 큰 울림을 준다.
강요된 침묵을 부수고
모든 목소리가 들리는 세상을 향하여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라는 점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오래된 남성 중심주의와 가부장제, 백인 우월주의가 도전받기 시작했으며, 환경, 성적 취향, 권력, 연대 등에 대한 정밀한 언어가 태동하고 있다. 그동안 침묵을 강요받았던 이들이 점점 더 소리 높여 자신의 이야기를 외치기 시작했으며, 미래 세대가 이끌어갈 세상이 눈앞에 놓여 있다. 어떤 변화는 대대적인 전환을 이룩하며 성큼 다가오기도 하지만, 어떤 변화는 차별과 배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심지어 때때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솔닛은 아무리 사소한 변화일지라도 그 작은 발걸음들이 만들어온 커다란 결과에 희망을 건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새로운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모두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리베카 솔닛
Rebecca Solnit
예술평론과 문화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1980년대부터 환경·반핵·인권운동에 열렬히 동참한 현장운동가다. 특유의 재치 있는 글쓰기로 ‘맨스플레인’(man+explain) 현상을 통렬하게 비판해 전세계적인 공감과 화제를 몰고 왔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그림자의 강』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어둠 속의 희망』 『해방자 신데렐라』 『마음의 발걸음』 『멀고도 가까운』 『걷기의 인문학』 『이 폐허를 응시하라』 『길 잃기 안내서』가 있다. 구겐하임 문학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래넌 문학상, 마크 린턴 역사상 등을 받았다.
들어가며 새로운 성당을 짓고 자명종을 울리는 일
1부 소리치는 자들과 침묵하는 이들
누구의 이야기, 누구의 나라인가
노바디는 알고 있다
진실마저 바꿔버리는 사람들
무의식적 편견이 대선에 출마하다
투표 억압은 집에서부터 시작된다
온갖 거짓말이 법으로 재탄생하다
남성의 몰락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포드 박사님, 당신이라는 지진을 환영합니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절대 멈추지 않기를
섹스는 자본주의적인 문제다
여성의 일과 괴물 예술가라는 신화
이 모든 분노
내가 남자라면
2부 오프닝
건너다
여인들의 도시
영웅의 등장은 일종의 재난이다
길게 펼쳐지며 오래 이어지는 현재 앞에서
무너지는 기념 동상과 이름의 힘
어린 기후 운동가들에게 보내는 편지
감사의 말
수록문 출처